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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브러햄 링컨, Lincoln, 노예를 해방시킨 지도자

오늘 소개할 인물은 바로
링컨
입니다 :)

링컨

 

자,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 Lincoln, 노예를 해방시킨 지도자

 

생몰년 : 1809~1865년
국 적 : 미국
출생지 : 켄터키주 서부 호젠빌
성 격 : 부지런하고 꿋꿋하며 유머가 넘침
신 분 : 정치가
가정 : 농민 가정 출신


링컨은 어려서 집이 가난해 정식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러나 공부하기를 좋아해 기회만 있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구하며 독학으로 풍부한 지식을 쌓았다. 열아홉 살이 되었을 때, 링컨은 처음으로 바깥세상을 접하게 되었다. 그는 배를 타고 오하이오강을 따라 미시시피강으로 진입해 뉴올리언스까지 갔다. 링컨은 여행 중에 흑인 노예의 비참한 생활을 보고 마음 아파했다. 그는 은연중에 기회가 온다면 노예 제도를 없애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1830년, 링컨은 부모님을 따라 일리노이로 이사를 간 뒤 스스로 삶을 개척해 나갔다. 그는 성실히 일했기 때문에 '정직한 에이브'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그는 1834년 일리노이의 의원에 당선되었다. 2년 후에는 변호사 자격시험에 통과했다. 변호사 생활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는 아름다운 메리와 결혼해 세 자녀를 두었다. 1854년, 공화당이 설립되자 링컨은 즉각 노예제도의 철폐를 주장하는 이 당에 입당했다. 2년 후, 링컨은 공화 당의 첫 전국 대표대회에서 부통령 후보로 추대되었다. 당시 미국 남부와 북부는 노예제도의 철폐를 두고 격렬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양측의 대립은 매우 민감한 단계까지 진행되고 있었다.


1858년, 링컨은 일리노이 참의원 경선에서 《분열한 집은 설 수가 없다》라는 유명한 연설로 남과 북 두 제도(노예 제도와 자본주의 제도)의 공존을 '분열한 집'에 비유했다. 또한 국가의 통일을 이룩하고 싶다는 희망도 분명히 밝혔다. 링컨은 이 경선에서 패배했지만 매력적인 연설은 그의 명성을 전국에 알렸다. 1860년, 링컨은 마침내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링컨의 당선으로 남부의 농장주는 자신들의 이익에 큰 위협을 느꼈다. 1860년 12월, 남부의 남케롤라이나주가 먼저 연방을 탈퇴하며 독립을 선언했다. 이어서 미시시피와 플로리다 등 노예를 많이 보유하고 있던 주들도 연방 탈퇴와 독립을 선언했다. 남부의 각 주들은 각기 자신들의 정권을 수립했다. 이들은 1861년 4월 12일 선전 포고도 없이 전쟁을 일으켰다. 연방 정부군이 주둔하고 있던 섬터 요새를 점령함으로써 미국 내전이 발발했다.

 

전쟁 초기에 북부군은 연전연패해 국민의 강한 불만을 샀다. 링컨은 노예제를 철폐할 때가 왔다고 판단했다. 1862년 9월, 링컨은 《노예해방선언》을 썼고 이듬해 1월 1일 정식으로 선포했다. 그 내용은 모든 주에서 노예제를 철폐하며 흑인 노예는 자유를 얻었다는 내용이었다. 이 법안은 국민들의 혁명적 열정을 불러일으켰고 북부군이 전세를 뒤집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1864년 11월, 링컨은 대통령에 재당선되었다. 1865년 4월, 미국 내전은 링컨이 이끄는 연방정부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전쟁의 승리가 링컨을 적대시하던 사람들이 사라졌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남부군이 항복을 선언하고 5일째 되던 날 밤, 링컨은 워싱턴의 포드 극장에서 연극을 보고 있었다. 링컨은 56세에 남부 노예주에게 매수된 저격수 부스에 의해 목숨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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