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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기독교의 창시자

오늘 소개할 인물은 바로
예수
입니다 :)

 

예수

 

자,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기독교의 창시자, 예수

 

생몰년 : 서기전 4~ 서기 30년 
국    적 : 이스라엘 
출생지 : 베들레헴 
성    격 : 의지가 굳고 관용적임 
신    분 : 기독교 창시자 
가    정 : 아버지 요셉은 목수였으며 어머니 마리아는 어질고 정숙한 주부였다. 

오늘날 '서기(서력기원)' 라는 개념은 예수가 탄생한 해를 그 시점으로 한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의 추산에 의하면 예수는 서력 기원 원년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 서기전 3~4년 즈음 태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갈릴리의 나사렛으로 이사했다. 
그래서 성인이 된 후에 자신을 나사렛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의 부모는 그에게 여호수아(Joshua)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으나 후에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에 의해 예수라고 불렸다. 

예수가 태어나던 때 집안이 가난해 온 가족이 아버지 요셉 한 사람이 벌어오는 돈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따라서 예수는 정식 학교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러나 유태민족은 일찍이 모세 시절부터 대대로 집에서 민족 문화를 가르쳤으므로 예수는 사회와 문화 등을 배울 수 있었다. 
예수가 열두 살 되던 해, 아버지를 따라 예루살렘의 성전으로 참배를 갔다가 그만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부모가 그를 찾아냈을 때 그는 여전히 교회에 앉아서 교리를 듣고 있었다. 
그러면서 때때로 질문을 했는데 그 한마디 한마디는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어머니가 예수에게 "아들아 네가 어찌 우리에게 이러느냐? 아버지와 내가 너를 얼마나 찾아다녔는지 아느냐?"라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는 오히려 "왜 저를 찾아다니셨나요? 제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모르신단 말인가요"라고 반문했다. 
그의 대답에 요셉과 마리아는 놀라고 말았다. 
그들은 예수의 입에서 나온 '아버지' 라는 말이 '하느님'을 일컫는 것인 줄 몰랐던 것이다. 
더군다나 하느님께서 열 두 살의 예수에게 어떤 일을 부탁했는지는 더욱 알 수 없었다. 
나사렛으로 돌아온 후에 예수의 생활은 예전과 다름없었다. 
서른 살이 되던 때 나사렛 사람들은 그를 '목수의 아들' 이라고 불렀다. 

예수는 서른 살을 전후에 요단강가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는 하느님의 신성한 뜻에 따라 광야에서 40일간 기도하며 '인간이 지은 죄를 속죄하기 위한 하느님의 어린 양', 즉 하느님을 위해 세상 사람들의 죄를 짊어질 구세주가 되었다. 
이후에 예수는 널리 포교활동을 펼쳤는데 그는 못하는 것이 없었다고 한다. 
예수는 사람들에게 선을 베풀고 무료로 병을 고쳐주었다. 
그러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숭배하며 따르게 되었다. 
예수는 그들 가운데서 12명의 제자를 골라 그들에게 늘 천국의 말씀을 들려주며 가르침을 주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성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


이러한 교의를 핵심으로 하는 기독교는 박해받는 유태인들에게 마음의 안식처가 되었다. 

예수가 포교활동을 하고 있을 때, 팔레스타인 지역을 장악한 유태교회의 최고 통치권은 예루살렘 최고 공회가 가지고 있었다. 
나날이 커지는 예수의 영향력은 최고 공회의 불만을 샀고 그들을 두렵게 만들었다. 
최고 공회는 예수에게 '왕을 사칭한 죄' 를 씌워 잡아들여 십자가에 못 박았다. 
예수가 죽은 후 그의 신도들은 계속해서 기독교를 전파했고 기독교의 영향력은 나날이 커져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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