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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 Honore de Balzac, 현실주의 문학의 거장

오늘 소개할 인물은 바로
발자크
입니다 :)

 

발자크

자,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발자크, Honore de Balzac, 현실주의 문학의 거장

 

생몰년 : 1799~1850년
국 적 : 프랑스
출생지 : 루아르강 유역의 투르
성 격 : 끈질기고 꿋꿋하며 완벽주의자
신 분 : 문학가
가 정 : 중산층 가정 출신으로 아버지는 금융실업가였음


발자크는 어려서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태어나자마자 시골 유모의 집에 맡겨졌고 여덟 살 때는 현지의 한 교회 학교에 맡겨져 교육을 받았다. 이 학교는 규율이 엄했지만 그는 장난이 심하고 공부에는 게을러 성적은 형편없었다. 한 번은 라틴어 시험에서 35명 가운데 32등을 했다. 부모님과 선생님은 그에게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1816년, 발자크는 대학에 입학해 법률을 공부했고 이어서 법률사무소와 공증인 사무소에서 서기관으로 근무했다. 이 시기에 발자크는 복잡하고 번거로운 소송 업무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지만 파리의 각양각색의 면모를 보며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1819년, 발자크는 학교를 졸업했고 아버지의 뜻에 따라 법률사무소에서 일을 했어야 했으나 그는 갑자기 가족들에게 작가가 되겠노라고 선언했다. 그로 인해 부자 관계는 나날이 나빠졌다. 발자크의 아버지는 심지어 경제적인 지원을 더 이상 해주지 않겠다며 그의 마음을 돌려보려 했다. 그러나 결국 아버지는 그에게 2년간의 시간을 줘보기로 했다. 이 기간 안에 발자크가 사람들이 감탄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면 다시 법률 사무소로 돌아가 일하기로 약속했다. 이후에 발자크는 교외의 한적한 곳 으로 가 창작인생을 시작했다.


1820년 4월 말, 반년 동안의 노력 끝에 발자크는 《크롬웰》이라 는 비극을 완성했다. 그러나 그가 집에서 4시간 동안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읽어주었을 때 청중들은 그의 작품에 별다른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발자크의 첫 창작은 그렇게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는 이번에는 다시 소설로 승부를 보기로 결정했으나 역시 실패하고 말았다. 1821년, 2년의 시험기간이 끝났으나 발자크는 이렇다 할 작품을 발표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고집을 부렸고 화가 난 아버지는 그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중단했다. 가족의 경제적 지원을 잃자 발자크는 곧 곤경에 빠져버렸다. 그는 생계를 위해 저속한 작품을 써보기도 하고 활자 주조 공장과 인쇄소를 열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모두 실패했으며 6만 프랑의 빚을 지고 말았다. 이런 경험은 발자크를 프랑스의 하급사회로 떨어뜨렸다. 그는 인간관계의 냉혹함을 인식하게 되었으며 금전관계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었다. 이것은 이후에 그의 문학 창작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가 되었다. 발자크는 다시 엄숙하게 문학 창작의 길로 들어섰다. 1829년 3월, 그는 장편 소설 빼미당을 발표해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후 3~4년 동안 발자크는 들나귀 가죽, 샤베르 대령, 고브세크, 외제니 그랑데》 등 20여 편의 소설을 창작했다. 1841년, 발자크는 웅대한 창작 계획을 세웠다. 그는 풍속 연구, 철학 연구, 분석 연구의 세 부분으로 나누고 137편의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는데 이것이 인간희극이다. 이 소설은 19세기 프랑스 사회를 전면적으로 반영하는 한 편의 프랑스 사회 풍속사였다. 발자크가 세상을 떠날 때 《인간희극은 91편이 완성되었으며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외제니 그랑데 고리오 영감이다.


발자크는 놀라울 정도로 많은 소설을 남겼지만 만년에는 역시 빈털터리였다. 1850년, 그는 경제적인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크라이나로 가서 18년 동안 사귀던 과부와 결혼했다. 그러나 장기간에 걸친 피로로 그의 생명은 이미 다해가고 있었다. 발자크는 파리로 돌아온 뒤 병이 들었고 병상을 떨치지 못한 채, 그 해 8월 18일에 5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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