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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데이, Faraday, 현대 전기 공업의 초석을 다진 인물

오늘 소개할 인물은 바로
패러데이
입니다 :)

 

패러데이

자,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패러데이, Faraday, 현대 전기 공업의 초석을 다진 인물

 

생몰년 : 1791~1867년
국 적 : 영국
출생지 : 런던
가 정 : 수공예 장인 가정. 아버지는 대장장이었음
성 격 : 인내심 있고 열정적이며, 지혜롭고 소박함 
신 분 : 화학자, 물리학자

패러데이는 어려서 집이 가난했다. 아버지가 버는 돈은 한 가족을 부양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늘 자선단체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패러데이는 열한 살 때 1년 정도 초등학교를 다녀 본 것 외에는 평생 동안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다. 열세 살 때에는 서점 겸 제본을 하는 가게에서 잡일을 하게 되었다. 그는 부지런히 일한 덕분에 제본 견습생이 될 수 있었다. 특이할만한 점은 그가 독서에 매우 흥미를 느꼈다는 점이다. 패러데이는 일을 하고 남는 시간에 많은 책을 읽어 주인의 격려를 받곤 했다. 패러데이는 가게에서 일하는 7년간 화학에 대한 흥미가 점점 깊어졌다.

 

1812년 어느 날, 가게에 온 고객이 패러데이에게 왕실학술강연회 표를 한 장 주었다. 주 연설자는 당시 유명한 과학자이자 런던 왕실학회의 화학교수인 데이비였다. 강연회를 보고 온 후 패러데이는 강연을 들으면서 메모했던 내용을 들고 데이비를 찾아가 실험실에서 일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얼마 뒤, 그는 데이비의 조수로 일하게 되었다. 1813년, 데이비 부부는 유럽여행을 하게 었는데 패러데이가  수행비서로 동행하게 되었다. 패러데이는 18개월 동안의 여행에서 앙드레마리 앙페르, 알렉산드로 볼타 등과 같은 유명한 과학자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런던으로 돌아온 패러데이는 자신의 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교수들의 강연을 듣기만 하면 바로 실험을 했고 분야별로 상세한 실험 기록을 남겼다. 1860년을 전후로 패러데이의 연구 활동이 끝났을 무렵에는 이런 실험 기록이 무려 16,000여 건에 달했다. 그는 순서에 따라 번호를 부여하고 여러 권으로 나누어 놓았다. 이렇게 기록해 둔 것과 기타 제본해서 책으로 만들기 전의 수백 가지의 필기가 여러 권의 책으로 출판되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전기학의 실험적 연구》이다.


1821년, 패러데이는 자신을 첫눈에 반하게 한 사라 버나드와 결혼했다. 1830년 이전에 패러데이는 화학자이며 당시 이미 성공적인 화학 분석과 실험 고문이 되어 있었다. 그는 1827년에 자신의 풍부한 경험을 모아 600여 쪽에 이르는 방대한 저서 화학 및 물리학의 실험적 연구》를 펴냈다.


패러데이의 업적 중 가장 뛰어난 것은 1830년에서 1839년에 이르는 시기 현대 전자학에 대한 공헌이다. 1831년 말, 10여 년의 고찰 끝에 패러데이는 전기의 본질을 정확하게 설명해 냈고 패러데이의 법칙(전자유도 법칙)'을 발견했다. 또한 가장 원시적인 발전기인 전자전류발생기를 발명하여 전력공업의 기초를 세웠다. 패러데이 역시 전자장 이론의 기초자인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일찍이 전자장이론은 패러데이의 가장 창조적인 생각이며 뉴턴 이래로 가장 중요한 발견이었다고 말했다. 맥스웰은 패러데이의 전자장 이론을 발전시켜 더욱 완벽한 수학적 형식을 찾아내 전자기장 이론을 세웠다.

 

 

패러데이 법칙
1833년 발견한 전기분해 법칙과 이보다 2년 전에 발견한 전자기유도 법칙이 있다. 전기분해
 법칙에 의해 물질의 원자구조와 관련해서 전기량에도 최소 단위(기본 전하량)가 존재한다는 것이 처음으로 예측되었고, 전자기유도법칙은 전자기유도가 일어나는 방식을 밝혀냈다.

 


전기와 자기의 통일성이 증명되고 나서 패러데이는 빛과 전자기 현상의 연관성을 찾기로 결심했다. 1846년 그는 《빛의 진동에 관한 생각》을 발표해 최초로 빛과 전자기의 본질을 밝혔다. 그는 일찍이 많은 실험을 통해서 중력과 전기의 관계를 발견하고자 했다. 또한 자기장이 편광된 빛에 미치는 영향과 전기가 빛에 미치는 영향 등을 밝히고자 했다. 실험 조건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실험이 모두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관점이 정확했다는 것은 훗날 다른 사람들에 의해 실증되었다.


1867년, 76세의 패러데이는 평온히 세상을 떠났다. 가까운 사람들은 그의 뜻에 따라 간소한 장례식을 치러주었으며 묘비에는 단 세 줄만을 적었다.

 

마이클 패러데이 / 1791년 9월 22일 태어나 / 1867년 8월 25일 세상을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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