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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볼프강 폰 괴테, 독일 문학의 기수이자 대문호

오늘 소개할 인물은 바로
괴테
입니다 :)

 

괴테

자,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독일 문학의 기수이자 대문호

 

생몰년 : 1749~1832년
국 적 : 독일 
출생지 : 프랑크푸르트 
성 격 : 다정했으며, 공부하기를 좋아함 
신 분 : 문학가, 사상가 

가 정 : 귀족 집안 출신. 아버지는 황실의 참의원을 지냈고, 어머니는 시장의 딸이었음


괴테는 유년기에 양호한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부친은 괴테가 변호사가 되기를 바라며 영국과 프랑스의 문자와 실용적인 지식들을 가르쳤다. 괴테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독일과 이탈리아 문학을 배우기도 했다. 1765년에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하다가 병으로 고향에서의 요양생활을 하는 동안 신비주의와 연금술, 그리고 신앙에 관심을 가졌다. 1770년, 괴테는 브루크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이듬해 학사학위를 받았다. 브루크 대학에 있는 동안 괴테는 셰익스피어와 호메로스 등의 작품을 접했고 그들의 창작기법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1774년, 괴테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발표하면서 크게 명성을 얻었다. 1775년, 그는 대공의 초청으로 바이마르(Weimar)에 갔고 이듬해 바이마르 공국 재상으로 임명되었다. 1786년 이전, 그는 바이마르에서 중신으로 지내며 정치에 깊이 관여하며 일련의 개혁들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는 이곳저곳에서 저항을 받았을 뿐 아니라 그 자신은 과학 연구와 문학 창작에 애착을 가지고 있었던 까닭에 딜레마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던 중 결국 1786년 가을, 괴테는 인사도 없이 이탈리아로 떠났다가 1788년 6월에 다시 바이마르로 돌아왔다.


이탈리아 여행은 괴테의 일생에서 중요한 전환기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았고 로마에서는 많은 예술가들을 만나 풍부한 문학적인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이탈리아의 그림 같은 풍경 또한 그의 시적인 상상력을 더욱 풍성하게 해 주었다. 바이마르로 돌아온 괴테는 문학예술 작품 창작에 몰두했고 희곡 《에그몬트》와 토르크바토 타소》를 차례로 발표했다. 1796년, 괴테는 저명한 시인 실러를 알게 되었다. 두 사람의 밀접한 왕래는 독일 문학을 유래 없는 발전으로 인도했다. 그들 덕분에 바이마르라는 작은 공국은 당시 독일과 유럽의 문화 중심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괴테는 실러의 격려로 청년기부터 구상해 오던 거작 파우스트》를 다시 창작하기 시작해 1808년 제1권을 출판했다. 그 후로 괴테는 파우스트》 2권의 집필에 몰두했고 1831년에 출판했다. 1807년, 괴테는 그와 18년간 동거해 오던 크리스틴과 결혼했다. 그때 그들의 아이는 이미 17살이었다.


괴테가 쓴 파우스트》는 장장 58년에 걸쳐 쓰여졌으니 그가 필생의 공을 들인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괴테는 1831년 최종적으로 이 책의 집필을 끝냈다. 집필을 끝낸 괴테는 일기에 이렇게 적어놓았다.

 

대부분의 일은 이미 끝냈다. 이후의 삶은 순전히 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무엇을 해왔는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는 이제 완전히 상관없다


파우스트》는 인생의 진리를 끊임없이 모색하고 진취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 파우스트는 백 살이라는 나이와 두 눈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인생에 대해서 '매일 삶과 자유를 개척해야 비로소 자유와 삶을 누릴 수 있다.' 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자산 계급이 생겨나던 시기 진리를 추구하며 끊임없이 노력하는 정신과 독일 민족의 우수한 전통을 반영한 것이다. 철의 재상 비스마르크는 파우스트》를 '세속의 성경' 이라 부르기도 했다.

 

1832년 3월 22일, 괴테는 파우스트 2권을 출판한 다음해 6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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