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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트르 대제, Pyotr, 제정 러시아를 근대화시킨 황제

오늘 소개할 인물은 바로
표트르 대제
입니다 :)

 

표트르 대제, 제정 러시아를 근대화시킨 황제

 

자,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표트르 대제, 제정 러시아를 근대화시킨 황제

 

생몰년 : 1672~1725년 
국 적 : 러시아 
출생지 : 모스크바 
성 격 : 강인하고 부지런하며 야심만만함 
신 분 : 정치가

가 정 : 황실 출신으로 차르 일렉세이와 나라슈키나 황후 사이에서 남

표트르는 어려서부터 전쟁놀이를 즐겨 친구들과 소년 군단 두 개를 만들기도 했다. 이 소년 군단은 표트르가 집권한 후 그의 직속 부대가 되었다. 어린 표트르는 늘 외국인 거주자촌의 주민들과 교류하며 그들에게서 수학과 항해술 등의 지식을 배우며 서구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1689년, 표트르는 귀족의 딸인 에브도키아와 결혼했으나 1696년 이혼한 뒤 그녀를 수녀원으로 보내버렸다.


1689년, 표트르는 정권을 장악하여 국사를 어머니와 삼촌 등에게 맡겨둔 채 자신은 여전히 전쟁놀이를 즐겼다. 그러다 1694년 모후가 별세하자 그때부터 친정을 시작했다. 1695년, 그는 러시아군 3만 명을 이끌고 투르크로 진격해 아조프해를 장악하고 흑해로 가는 통로를 확보하고자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그는 재빠르게 전함 30척과 운송선 및 어뢰정으로 조직된 해군을 창설했다. 같은 해 5월 육로와 해로로 포위 해 들어가 카스피를 장악했다. 1697~1698년 사이에 표트르는 서유럽으로 대사단을 파견했다. 서유럽 각국과의 반 투르크 연맹을 확산시키는 동시에 서유럽의 각국으로부터 선진적인 과학기술을 배워왔다. 아울러 기술자와 전문가들을 청해오고 신식 기구와 설비들을 들여왔다. 1698년 국내 군사 반란을 평정한 뒤, 표트르는 유럽화 정책을 펼쳐 경제, 군사, 문화, 정치 등 방면에서 개혁을 단행했다.


경제 방면에서 표트르는 공업을 발전시키고 사회 기반 시설들을 적극적으로 건설했다. 또한 통상을 위한 항구를 만들고 국내 무역을 발전시켰으며 관세 보호 정책을 펼쳐 수출을 장려하고 수입은 제한했다. 군사적으로는 보병, 기병, 포병, 공병으로 조직된 정규 육군 20만과 함선 48척, 대량의 어뢰정, 해병 3만으로 조직된 해군 함대를 창립했다. 문화 교육 방면에서 많은 학교를 지었고 귀족의 자제들에게 수학과 한 가지 외국어를 반드시 배우도록 했다. 그는 러시아 최초의 인쇄소와 박물관, 도서관 및 극장을 지었다. 아울러 최초로 전 러시아에 <베도모스티>('기록'이라는 뜻을 가짐)라는 신문을 발행하며 직접 편집장을 맡았다. 1724년에는 러시아 과학원을 세우기도 했다. 정치적으로는 종교의 통제권을 국가와 자신의 수중에 두고 행정관리 제도(관등표 : 근대 행정조직의 기초)를 개혁해 중앙집권제를 강화했다. 약한 생산력과 상공업, 문화에서 저조한 발전을 보이던 러시아는 개혁을 통해 유럽 강국의 기초를 마련할 수 있었다.


표트르는 국내를 개혁함과 동시에 외부로는 끊임없이 전쟁을 벌여 동서남북 모든 방향으로 러시아의 영토를 넓혔다. 그는 전략적 의미가 큰 네바강 하구에 상트페테르부르크 요새를 부설했다. 또한 1713년에는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겼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20년도 채 안 되어 몇 개의 작은 촌락에서 인구 7만 명의 대도시로 성장했다. 1721년 10월, 표트르는 '황제'와 '조국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받으며 러시아의 국호를 러시아 제국으로 바꾸었다. 표트르 대제는 서로는 발트해에서 동으로는 태평양, 북으로는 북극해에서 남으로는 인도양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려는 이상을 품었으나 실현하지는 못했다. 1725년 1월 28일,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향년 53세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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