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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워싱턴, Warshington, 미국 건국의 아버지

오늘 소개할 인물은 바로
조지 워싱턴
입니다 :)

 

조지 워싱턴

자,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조지 워싱턴, Warshington, 미국 건국의 아버지

 

생몰년 : 1732~1799년 
국 적 : 미국 
출생지 : 버지니아 주
성 격 : 인내심이 강하고 민주적
신 분 : 정치가, 군사가
가정 : 귀족 출신, 아버지는 장원의 영주였음


조지 워싱턴은 명문 귀족 출신이다. 어려서부터 우수한 예절 교육을 받으며 도덕적인 분위기에서 자랐다. 1752년, 형 로렌스가 죽고 워싱턴은 8,000에이커에 달하는 토지와 농노 수백 명을 물려받았다. 같은 해, 그는 영국의 버지니아 총독 로버트 딘위디의 명으로 프랑스군에 영국이 에팔레치아 산맥 서쪽에 보유하고 있는 영토의 '잠식'을 중단할 것을 요청했다. 그의 정치 인생은 그 때로부터 시작되었다. 워싱턴은 스물세 살에 이미 변경의 안전과 버지니아를 책임지는 총사령관이 되었다. 1759년 1월, 워싱턴은 부유한 과부인 마사 댄드리지 커스티스와 결혼했다.


1773년, 유명한 보스턴 차사건이 발생하며 영어과 북미 대륙간의 충돌이 격렬해졌다. 워싱턴은 완전한 독립이 아니고서는 북미의 탈출구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1774년 9월 5일, 필라델피아에서 제1차 대륙회의가 열렀다. 워싱턴은 팔라멜피아의회 대표로 군장을 하고 외의에 출석했다. 이 대회에서 워싱턴은 무장투쟁을 최후의 수단으로 삼자는 결의를 독촉해 회의에서 채택되게 했다. 당시의 북미 대륙은 해군이 없었고 그렇다고 이렇다 할 육군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따라서 세계 패권을 쥐고 있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 을 상대로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은 무척 용기 있는 결단이었다. 1775년 4월 18일, 렉싱턴의 총성을 시작으로 미국의 독립 전쟁이 시작되었다. 같은 해 5월 10일, 제2차 대륙회의가 필라델피아에서 열렸고 워싱턴은 독립군 총사령관으로 결정되었다.


독립군이 초기에 승리를 거두었기는 했지만 미국군에 비하면 적이 훨씬 강하다는 것은 분명한 일이었다. 독립군은 뉴욕 수비전에서 거의 전군이 몰사할 뻔했다. 1776년 겨울, 독립군이 매우 힘든 상황에 놓이자 워싱턴은 모험을 택했다. 그는 군대를 이끌고 트렌턴에서 프로이센 용병을 기습 공격했다. 이 싸움에서 워싱턴은 다섯 명의 사상자(2명 사망, 3명 부상)를 냈을 뿐 적 천여 명을 무찔러 군의 사기를 올려놓았다. (델라웨어 전투) 1777년 가을, 세러토가 전투가 시작되었다. 허드슨 강변 서안의 고지에서 영국의 명장 존 버고인 장군과 8,000여 명의 군대는 독립군으로부터 양측면을 공격당해 투항했다. 이 전투는 1778년 2월 미불 동맹을 촉진시켰고 미국은 점차 전쟁의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 1781년 10월 9일 미국 독립 전쟁은 결국 미국의 승리로 끝났다.


전쟁이 끝나고 워싱턴은 어떤 상도 거절한 채 부대를 떠나 마운트 버논으로 돌아갔다. 1787년, 워싱턴은 다시 정계에 몸을 담아 제헌회의를 열고 현재까지 이어오는 헌법을 만들었다. 1789년, 워싱턴은 미국의 초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두 차례의 임기를 마친 후(1789~1797년), 워싱턴은 3선 대통령으로 추대되었으나 단호히 거절하고 마운트 버논으로 돌아갔다.


1799년, 워싱턴은 67세에 후두염으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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