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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와트, Watt, 증기기관의 발명가

오늘 소개할 인물은 바로
제임스 와트
입니다 :)

 

제임스 와트

 

자,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제임스 와트, Watt, 증기기관의 발명가

 

생몰년 : 1736~1819년 
국 적 : 영국 
출생지 : 스코틀랜드의 클라이드(그린녹) 
성 격 : 침착하며 겸손함, 고집스러움 
신 분 : 과학자 
가 정 : 평민 가정 출신. 아버지는 조선 사업에 종사했고 어머니는 와트의 계몽 선생님이었음

 
제임스 와트는 어려서 몸이 약해 병치레가 잦아 학교 다닐 나이가 되었을 때도 부모는 그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그러나 와트의 어머니는 그에게 문법과 수학을 가르치며 각종 장난감과 기계를 가지고 놀게 했다. 따라서 그는 어려서부터 문제를 관찰하고 사고하며 실천하는 응용력을 기를 수 있었다.

 

뒤에 와트는 글래스고 그래머스쿨에 들어갔으나 건강으로 인해 학교를 도중에 그만 두어야 했다. 열여덟 살이 되던 해, 와트는 글래스고에서 기술을 배우게 되었다. 후에 그는 런던으로 가서 기계 제조에 대해 공부했다. 1757년, 와트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글래스고 대학에서 수학 기계공이 되었다. 이것은 와트에게 학습과 실전에서 응용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화학자 조지프 블랙과 후에 물리학 교수가 된 존 로빈슨 등과 친분을 맺었다. 세 사람은 늘 함께 모여서 증기기관의 개량에 대해 연구하고 토론했다. 와트는 그렇게 해서 많은 과학적 이론과 지식들을 익힐 수 있었다.


1764년, 와트는 사촌 누이인 마가렛 밀러와 결혼했다. 같은 해, 와트는 뉴커먼 배수기관을 수리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기계는 금방 고칠 수 있었지만 와트는 그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그 기계를 개량하고 싶었던 것이다. 와트는 뉴커먼 배수기관이 많은 결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연료 소모가 지나치게 크고 활용 범위가 작아 갱도의 물을 뽑아 올리거나 관개에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와트는 이것을 더 좋은 증기 기관으로 개량하기 결심했다. 그는 존 바로크라는 공장주와 합작해 2년간 반복 실험한 결과 1768년 실제로 움직일 수 있는 증기 기관을 만들게 되었다. 이듬해 그는 발명 특허권을 획득했다. 와트가 발명한 새 증기 기관은 분리식 컨덴서 등 발전된 기술을 도입하여 연로 소비량을 뉴커먼 기관의 1/4로 줄였다. 이런 중요한 기술적 진전으로 효율을 높일 수 있었다.


1781년, 와트는 왕복운동을 회전운동으로 바꿔주는 다섯 가지 방법을 개발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유성기어장치'는 이후 공업 생산에 광범위하게 응용되고 있다. 1782년, 와트는 '복동(순환식)기관' 으로 특허를 취득했고 1784년에는 또다시 새로운 특허를 내면서 '수평(평행) 운동'을 개발했다. 이로써 와트기관은 더욱 널리 쓰이게 되었다. 1788년, 그는 다시 원심조속(왕복 운동을 회전 운동으로 개량)를 발명했고 1790년에는 압력계를 발명했다. 와트는 이러한 장치들을 이용해 실제적인 와트기관을 완성할 수 있었다.


와트기관의 발명은 제1차 산업혁명에서 중대한 역할을 했다. 와트기관의 광범위한 활용으로 인류는 어느 때보다 강력하고 통제가 가능한 동력 자원을 얻게 되었다. 또한 와트 기관의 광범위한 활용은 경제의 비약적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1807년, 미국인 풀턴은 와트기관을 선박에 장착해 범선의 시대에 종결을 고했다. 1814년, 영국인 트레비식은 와트기관을 열차에 장착해 육로 운송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1785년 와트는 런던 왕실 학회 회원으로 선발되었으며 1806년에는 글래스고대학의 법학 박사를 받게 되었다. 1814년 그는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의 회원으로 추천되었다. 1819년 8월 25일, 와트는 85세의 나이로 자신의 집에서 편안히 눈을 감았다. 후에 사람들은 그의 위대한 발명을 기념하기 위해 출력의 단위를 '와트'라 이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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