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메흐메트 2세, Mehmet II, 오스만 제국의 위대한 정복자

오늘 소개할 인물은 바로
메흐메트 2세
입니다 :)

메흐메트 2세, 오스만 제국의 위대한 정복자

 

자,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메흐메트 2세, 오스만 제국의 위대한 정복자

 

생몰년 : 약 1430~1481년 
국    적 : 터키 
출생지 : 에디르네  
성    격 : 냉혹하고 호전적이며 호기심이 많음 
신    분 : 정치가, 군사가  
가    정 : 부친은 술탄 무라드 2세 

메흐메트(매머드 2세라고도 함)는 어려서 궁내 학교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았다. 
좀 자란 뒤에는 오스만의 관례에 따라 소아시아 서부의 마니사로 보내져 그곳을 관리했다. 
1444년 그의 부친 술탄 무라드가 정사에 염증을 느끼고 물러나니 12세였던 마흐메트가 왕위를 물려받을 수밖에 없었다. 
흐메트가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라는 외세의 침입에 놓이게 되었고 대신들은 정권 다툼에 열을 올리는 등 혼란한 국면에 처했다. 
그러나 어린 흐메트는 이를 통제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늙은 술탄 무라드가 할 수 없이 복위하게 되었다. 
1446년 그는 다시 마니사로 보내져 유명한 학자들에게서 문학과 역사를 공부했고 특히 전략전술에 대해 집중적으로 공부하면서 성장해 나갔다. 

1451년, 술탄 무라드가 병사하자 흐메트는 속히 수도로 돌아와 왕위를 계승했다. 
즉위하던 날, 그는 명령을 내려 아직 젖먹이인 동생을 죽여 잔인한 면모를 드러냈다. 
그는 처음 왕위에 올라 비잔틴 제국을 정복하기로 결심했다. 
1453년 4월, 친히 15만 대군을 거느리고 콘스탄티노플을 포위하며 육로와 해로로 공격해 들어갔다. 
콘스탄티노플의 수비군은 만 명도 안 되었지만 견고한 방어 진지 덕분에 적의 공격을 차례로 막아냈다. 
그러자 흐메트의 군대는 수없이 많은 부상자가 발생하여 동요되고 혼란에 빠져 있었다. 
이런 긴박한 순간에 흐메트는 사병들에게 성을 함락시키면 사흘간 사병들이 재물을 약탈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줄 것이며, 일체의 재물과 노예는 승리자의 몫으로 하겠다고 약속했다. 
결국 오스만의 군대는 콘스탄티노플의 견고한 성벽을 무너뜨렸고 비잔틴 황제는 전사했다. 
입성한 다음날 흐메트는 철군을 요구하던 주요 대신들을 잡아서 처형했다.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것은 천년을 이어온 비잔틴 제국의 멸망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콘스탄티노플은 이후에 이스탄불로 개명되어 오스만 제국의 정치 행정 중심도시가 되었다. 
흐메트는 정복지의 통치에 대해 자제와 관용 정책을 펼쳤다. 
그는 제국의 행정과 무슬림 신민에 반하지만 않는다면 기독교도들이 자신들의 방식과 법률로 생활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또한 종교적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했을 뿐 아니라 민족 학교를 세워 자신의 민족 언어로 교육받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는 당시 유럽의 기독교 국가들이 종교적인 차별과 박해하는 정책을 취했던 것과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것이다. 

정복자 흐메트는 명성에 걸맞게 31년의 재위 기간 동안 거의 해마다 정복 전쟁을 일으켰다. 
그는 통치 만년에 이미 소아시아의 20개 도시와 유럽의 28개 도시를 세운 대제국이 되었다. 
또한 그는 스스로를 '두 대륙과(발칸과 아나톨리아) 두 대양(에게해와 흑해)의 군주' 라 불렀다. 
1481년 5월 초, 흐메트는 자신의 큰 아들 바야 지트에게 독살당했는데 그의 나이 채 50이 되지 않았을 때였다.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