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레오나르도 다빈치, Da Vinci, 문예 부흥의 거장

오늘 소개할 인물은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입니다 :)

 

다빈치, 문예부흥의 거장

 

자,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문예 부흥의 거장

 

생몰년 : 1452~1519년  
국    적 : 이탈리아  
출생지 : 토스카나 지방의 빈치 
성    격 : 진지하며 지식에 대한 욕구가 강했음 
신    분 : 화가, 조각가, 과학자, 기술자, 철학자 
가    정 : 아버지는 공증인이었으며 어머니 카테리나는 농부의 딸이었음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이탈리아 문예 부흥 시기 최고의 화가로 전 유럽 문예 부흥 시기에 가장 뛰어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박학하고 다재다능했으며 심오한 사상으로 예술의 대가 혹은 과학의 거장으로 불린다. 
또한 그는 문예 이론가였으며 철학자, 시인, 음악가, 기술자와 발명가이기도 했다. 
후세의 학자들은 그를 '문예 부흥 시기의 가장 완벽한 대표'. '최고의 학자', '필적할 자가 없는' 천재 등으로 표현했다. 

다빈치는 사생아로 태어나 어머니의 손에서 다섯 살까지 자랐으며, 그 후에는 할아버지 집에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당시 다빈치는 총명했으며 부지런하여 공부하기를 좋아했으며 다양한 것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중에서도 다빈치는 국이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 종종 이웃들에게 그림을 그려주었으며 '회화의 신동'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다빈치는 열네 살에 피렌체로 가서 살게 되었는데 유명한 예술가 베오키오를 스승으로 모시며 체계적으로 조형예술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다빈치는 그곳에서 지명도 높은 숱한 인문주의자와 예술가, 과학자들을 사귀면서 인문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스무살 때에는 이미 예술에 조예가 깊어져 모두가 인정하는 화가가 되었다. 
그가 그린 벽화 《최후의 만찬》, 제단화 《암굴의 성모》와 초상화 《모나리자》는 세계 예술사에 길이 남을 명작이며 유럽 예술의 최고봉이다. 

철학자로서의 다빈치는 지식은 반드시 실천에서 출발해야 하며 실천을 통해서 과학의 오묘함을 탐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사상은 뒤에 갈릴레오에 이르러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 
또한 영국 철학자 베이컨의 이론적인 보완을 통해 완성되어 근대 자연 과학의 기본적인 방법으로 자리 잡았다. 
다빈치는 천문학 영역에서는 전통적인 '천동설'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으며, 심지어 태양에너지를 이용할 생각도 했었다. 
물리학 방면에서는 액체의 압력에 대한 개념을 발견했으며 연통관의 원리를 도출해냈다. 
또 관성의 법칙을 발견하고 지렛대의 원리를 발전시켰다. 
또한 원자 원리를 예지하여 원자력의 위력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그는 해부학과 생리학에서도 위대한 업적을 남겨 근대 생리해부학의 시조라고 여겨진다. 
그의 연구와 발명은 군사와 기계, 수학 영역과 수리공정 등 여러 방면에서 중대한 공헌을 했다. 
이렇듯 다빈치의 연구는 자연 과학의 모든 영역을 포함하여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발전과 성과를 거두었다. 

다빈치는 만년에 유랑을 하며 지냈는데 1517년 예순다섯 살에 이탈리아를 떠나 프랑스로 갔다. 
1519년 5월 2일, '문예부흥의 거장' 이자 '인류 지혜의 상징'인 다빈치는 프랑스에서 세상을 떠났다.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