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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 Machiavelli, 정치학의 아버지

오늘 소개할 인물은 바로
마키아벨리
입니다 :)

마키아벨리, 정치학의 아버지

 

자,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마키아벨리, 정치학의 아버지

 

생몰년 : 1469~1527년  
국    적 : 이탈리아  
출생지 : 피렌체 
성    격 : 예민하고 급진적이며 자유를 숭상함 
신    분 : 정치가, 문학가, 군사가 
가    정 : 몰락한 귀족 가문 

마키아벨리의 집안은 피렌체의 명문 귀족이었다. 
일찍이 13세기에 가문의 숱한 인물들이 정치적 요직을 두루 지냈으나 마키아벨리의 집은 그중에서 빈한한 축에 속했다. 
그의 부친은 공직에 있었으나 빚을 상환하지 못해 면직되고 말았다. 
집안이 가난했던 탓에 마키아벨리는 어렸을 때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러나 부모님의 엄격한 교육과 가정 분위기 속에서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또한 독립적으로 사고하는 습관으로 유년기부터 이미 재능과 식견이 뛰어나다는 칭찬을 들었다. 

그는 성장한 이후 정치에 투신했는데 스물아홉에 피렌체 공화국의 최고 행정 기관인 자유 평화 10인 위원회'의 부서기관장이 되었다. 
외교와 군사 및 정부 문건의 초고를 쓰며 여러 차례 이탈리아 각지와 독일, 프랑스 등지에 외교 사절로 파견되기도 했다. 
1501년 마키아벨리는 마리에타 코로시니와 결혼하여 다섯 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는 1512년 공화국이 전복되고 군주가 복위하자 체포돼 감금되었다. 
그것으로 그의 정치생명은 끝이 나게 된다. 
다시 자유를 찾게 된 뒤로 그는 오래도록 고향에 숨어 지내며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생활을 했다. 
그 무렵 그는 문장으로 이론을 세워 뛰어난 학술적 업적을 이루어 냈다. 

1512~1513년, 마키아벨리는 역사 서적인 동시에 정론서인《티투스 시대 초기의 10년에 관한 서설》을 완성했다. 
그는 이 저서에서 자신의 공화주의 사상을 명확히 밝혔으며 역사적으로 유명했던 전투에 대해 분석하며 군사학적 관점을 제시했다. 
그가 편찬한 《피렌체사》는 후세에 이탈리아의 진귀한 역사 연구 자료가 되고 있다. 
이 책은 간결 명확하면서도 생동하는 아름다움을 지닌 이탈리아어 산문 형식으로 쓰였다. 

그가 지은 저서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당연히 1513년에 완성된 《군주론》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이탈리아의 수백 년간에 이르는 정치적 실천과 격렬한 혁명에 대에 총 결산했다.
이 책은 작가의 10여 년에 걸친 경험과 교훈의 이론적 결정체이다. 
그는 공화정만이 최고의 국가 통치 방식이기는 하지만 공화제로는 이탈리아의 사분오열된 국면을 해소할 수 없다고 보았다. 
무한한 권력을 가진 군주정만이 국민을 복종시키고 강한 적의 침입을 막아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권모술수, 잔학 행위, 사기, 위선, 배신 등 수단을 가릴 필요가 없으며 단지 군주의 통치에 도움이 되기만 한다면 모두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의 이런 사상을 후에 사람들이 '마키아벨리즘'이라고 불렀다. 

《군주론》은 정치학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저서 가운데 하나이다. 
《군주론》은 바티칸에서 정한 첫 번째 정치 금서로 인류 사상사에서 무참히 비난받았던 한편 호평을 받은 책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책은 출판되고 400여 년간 줄곧 정치가, 모략가, 야심가들의 지대한 관심을 받았다. 
20세기 후기에 이르러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과학적인 태도로 이 책을 접하기 시작했다. 
유사 이래 정치 투쟁의 기법에 대한 가장 독보적이고 예리하며 성실한 '검시보고서'라고 보게 된 것이다. 
또한 마키아벨리는 정치학과 논리학을 최초로 분리한 정치 사상가라고 평가되고 있다. 

1527년, 피렌체에서 폭동이 발생해 군주 통치가 전복되자 마키아벨리는 다시 공화국 신정부를 위해 여생을 바치며 일하고자 했지만 거절당하고 말았다. 
그는 좌절한 나머지 병을 얻어 얼마 후 절망감과 고통으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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