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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 갈릴레이, Galileo Galilei, 이탈리아의 위대한 과학자

오늘 소개할 인물은 바로
갈릴레이
입니다 :)

 

갈릴레이, 이탈리아의 위대한 과학자

자,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갈릴레이, 이탈리아의 위대한 과학자

 

생몰년 : 1564~1642년 
국 적 : 이탈리아 
출생지 : 피사 
성격 : 신중하고 활발하며 생각이 깊음 
신 분: 천문학자, 물리학자 
가정 : 몰락한 귀족 가문. 아버지 빈센치오는 뜻을 이루지 못한 음악가였음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교회의 작은 학교에 다녔는데 음악과 그림을 좋아했다. 또한 장난감과 각종 기계의 구조에 관심이 많았다. 성장한 후 그는 라틴어와 그리스어, 철학에 빠졌다. 1581년, 열일곱 살의 갈릴레이는 피사대학에 들어가 의학을 공부했다. 그는 실천을 중요시하고 독립적으로 사고하기를 즐겼으며 수학에 심취했다. 1586년, 갈릴레이는 아르키메데스의 원리와 지렛대의 원리를 결합해 합금 성분을 측정할 수 있는 '물정 역학 저울'을 발명했다. 2년 후 그는 '고체의 질량 중심'이라는 논문도 발표했다. 
이러한 수학적인 개가를 올린 것을 계기로 그는 1589년 피사대학의 수학 강사로 초빙되었다. 이듬해 그는 유명한 피사의 사탑 실험으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 원칙에 도전했다.

 

피사의 사탑 실험 이후로 갈릴레이는 교수들에게 공격받고 배척되어 피사 대학에서 쫓겨났다. 그 이후 갈릴레이는 베이스의 학술 분위기가 자유로윤 파도바 대학에서 수학 교수 자리를 얻었다. 갈릴레이는 파도바 대학에서 18년 동안 일했다. 이 기간에 그는 물체의 평형과 경사면에서의 운동, 포물선 낙하법칙 등 액체와 역학 등에 관해서 깊이 연구했고 공기 온도계를 발명했다. 1609년, 갈릴레이는 네덜란드의 광학자 리더세이가 우연히 두 개의 렌즈를 겹쳤다가 이것을 통해서 먼 곳에 있는 것을 육안보다 더 크게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것에 착안해 갈릴레이는 반년 후에 세계 최초의 33배율의 천체 망원경을 발명했다.


갈릴레이는 이 천체 망원경으로 오묘하고도 신비한 우주의 신비를 탐색하고 중대한 발견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달의 표면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처럼 매끈한 것이 아니라 불규칙한 요철로 덮여 있다는 것이다. 또한 목성 주변에는 4개의 위성이 돌고 있다는 것, 지구는 천체 운행의 중심이 아니며 태양 표면에는 흑점이 있다는 것, 토성에는 고리가 있다는 것 등을 발견했다. 이러한 결과는 모두 코페르니쿠스의 지구와 다른 행성들이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지동설'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되었다. 1610년, 갈릴레이는 《별세계의 보고를 발표해 그가 발견한 것들을 세상에 알렸다.

사람들은 깜짝 놀라며 "콜럼버스는 신대륙을 발견했지만 갈릴레이는 새로운 우주를 발견했다."라고 말했다. 

1613년, 갈릴레이는 《태양의 흑점에 관한 서한을 발표하며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뒷받침했다. 그로 인해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지동설'에 관한 강의를 금지당했다. 1632년, 갈릴레이의 가장 유명한 저작인 《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의 2대 세계 체계에 관한 대화가 출판되었다. 갈릴레이는 이 저서로 인하여 일흔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로마 교황청의 심판과 지독한 시련을 겪어야 했다. 그는 코페르니쿠스의 학설을 버릴 것을 강요당했고 종신형을 받고 가택연금에 처해졌다. 그러나 갈릴레이는 과학연구를 멈추지 않았고 3년 후, 그는 최후의 저서인 《두 개의 신과학에 대한 수학적 논증과 증명》을 완성했다. 이 책은 그가 역학 방면에서 세운 연구 실적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그 가운데 많은 원리들은 후에 뉴턴이 '뉴턴의 3대 법칙'으로 발전시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책이 네덜란드에서 출간되었을 때 갈릴레이는 이미 두 눈을 볼 수 없게 되었다. 1642년, 갈릴레이는 병으로 세상과 이별을 고했으니 향년 78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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