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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드골, 프랑스 제5공화국 대통령

오늘 소개할 인물은 바로
샤를 드골
입니다 :)

 

드골, 프랑스 제5공화국 대통령

 

자,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샤를 드골, 프랑스 제5공화국 대통령

 

생몰년 : 1890년~1970년 
국    적 : 프랑스 
출생지 : 북프랑스의 릴 
성    격 : 과감하고 완강하며 고집스러움 
신    분 : 정치가 
가    정 : 시민 가정 출신. 부친은 철학교수이며 어머니는 가톨릭 신자 

 

드골의 부친은 일찍이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 참가한 적이 있는 민족주의 감정이 강한 사람이었다. 
드골은 이런 부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909년, 드골은 프랑스의 유명한 생시르 육군 관학교에 들어가 군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1912년, 학교를 업한 후 드골은 페탱의 수하에서 소위를 지냈고 이듬해에 바로 중위로 승진했다. 
1914년 8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 드골도 페탱을 따라 참전했다가 부상을 세 차례 입기도 했다. 
1916년에는 독일군의 포로로 잡혔다가 전쟁이 끝나고 나서야 자유의 몸이 되었다. 

프랑스로 돌아온 드골은 생시르 모교에서 군사 교관을 지냈고 페탱 원수의 막료를 역임했다. 
그는 또 《칼날》, 《직업 군인서》와 같은 군사 이론 서적을 썼다. 
1939년 9월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진 후 드골은 프랑스 제5군 기갑 사단장을 담당했다. 
독일군이 프랑스를 침입한 후에는 제4기갑 사단장으로 독일군에 강력히 맞섰으나 실패의 국면을 만회하지는 못했다. 

1940년 6월 17일 페탱 원수는 프랑스군에게 저항을 멈추고 항복할 것을 선포했다. 
그러나 이튿날 프랑스 국민들은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다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저는 드골 장군입니다. 저는 현재 런던에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프랑스는 저항의 불꽃을 꺼뜨려서는 안됩니다. 아니, 절대로 꺼질 수 없습니다." 드골은 곧 굴욕과 고통에 빠져 있는 프랑스 민족의 희망이 되었다. 

드골은 런던에서 '자유 프랑스 위원회'를 조직하고 적극적으로 무장부대 창설을 계획했다. 
1943년 드골은 루즈벨트와 처질의 안배 하에 프랑스 민족해방위원회를 조직했으며 다음해에 프랑스 임시정부의 수반이 되었다. 
1944년 8월 24일, 드골은 연합군을 따라 파리로 귀환한 후 군권과 정권을 장상악하게 되었다. 
그러나 프랑스 각 당파간의 모순은 정부를 위기에 몰아넣었고 드골은 1946년 초에 사임했다. 
후에 그는 《전쟁회고록》을 집필했다.  
1958년,프랑스 제 4공화국이 위기에 빠지자 드골이 다시 나서 프랑스의 국가 지위를 회복하기 위해 힘썼다. 
그는 초강대국 미국과 첨예하게 대립하며 프랑스의 독자적인 핵무장 발전을 견지해나갔다. 
또 미국의 '다각적 핵무장 계획'을 거절하고 유럽의 연합을 주장했다. 
'유럽의 유럽인에 의한 유럽' 이라는 구호를 부르짖었으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서 탈퇴한 최초의 유럽 국가가 되었다. 

드골은 10년 동안 프랑스를 이끌며 대통령직을 두 차례 연임했다. 
1969년 드골은 국가의 심각한 위기로 인해 대통령직에서 사임했다. 
1970년 11월 19일, 그는 급성 심장병으로 향년 80세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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