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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 영원토록 잊혀지지 않는 작가

오늘 소개할 인물은 바로
헤밍웨이
입니다 :)

 

헤밍웨이, 영원토록 잊혀지지 않는 작가

자,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헤밍웨이, 영원토록 잊혀지지 않는 작가

 

생몰년 : 1889~1961년 
국  적 : 미국 
출생지 : 시카고 교외의 오크파크 
성  격 : 강건하고 호방하며 모험을 좋아함 
신  분 : 문학가 
가  정 : 평민 가정 출신, 아버지는 의사였고 어머니는 교사를 지냈음 

소년 시절의 헤밍웨이는 건강한 신체와 충만한 정신으로 적극적인 학교생활을 했다. 
그는 교내 수영부와 축구부 일원이었으며 교내신문의 편집부원과 고적대에서 첼로를 맡기도 했다. 

그는 1917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캔자스로 가서 '스타' 지의 기자가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말기에 헤밍웨이는 적십자 구호활동에 참여해 이탈리아의 전장으로 가 참혹한 전쟁을 경험했다. 
그는 종전에서 중상을 입었는데 그의 몸에서 발견된 탄환 조각이 237개나 되었다고 한다. 
헤밍웨이는 전쟁에서 용감히 싸워 미국과 이탈리아의 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는 1921년에 결혼했고 같은 해 12월, 캐나다 《토론토 스타》지의 파리 특파원이 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유명한 작가인 스타인 등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헤밍웨이가 진정한 작가가 될 수 있도록 많은 조언과 격려를 해 주었다. 
헤밍웨이는 '미망(迷妄)의 세대' 작가의 초기 사상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 
헤밍웨이는 파리에서 생활하면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차츰 함축되고 정제된 창작적 특색을 가지게 되었다. 

1922년, 헤밍웨이는 토론토로 돌아왔고 그 이듬해 첫 번째 저서인 《세 편의 단편과 열 편의 시》를 세상에 내놓으며 뛰어난 창작의 재능을 발휘했다. 
헤밍웨이는 1920년대에 단편소설 《우리들의 시대에》(1924), 《남자들만의 세계》(1927)와 장편소설《해는 또다시 떠오른다》(1926), 《봄의 격류》(1926) 및 《무기여 잘 있거라》(1929) 등을 차례로 발표했다. 
헤밍웨이는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로 이름을 얻기 시작했는데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젊은이들의 전쟁 후 유럽에서의 생활상을 그린 작품이다. 
이 책의 젊은이들은 방탕한 생활을 하며 공허한 영혼의 고통을 해소하려 했다. 
책은 출판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청년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아울러 '미망(迷妄)의 세대'의 모범적 작품이 되었다. 
이 책은 출판된 후 곧바로 10만 여 부가 팔렸으며 할리우드에서 가장 높은 가격의 판권에 팔려나갔다. 
스페인 내전이 발발한 후 헤밍웨이는 4차례나 스페인으로 가서 전시상황을 보도하는가 하면 민주 두 파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싸우기도 했다. 
1940년, 그는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작품인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출판하여 다 한 번 명성과 영예를 얻었다. 
1941년에 헤밍웨이의 저작은 이미 세계에서 100만 부 이상이 팔려나가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40~50년대에 헤밍웨이의 작품은 언론의 조명을 받게 되었고 다수의 저작이 영화로 상영되었다. 
헤밍웨이는 언론이 만들어낸 호방하고 거리낌 없는 전기적 인물이 되었다. 
헤밍웨이는 자신의 첫 단편소설인 《우리들의 시대에》부터 시작해 줄곧 신념을 굽히지 않는 강한 의지력의 정신을 추구했다. 
 이런 사상의 추구는 《노인과 바다》에서 최절정에 올랐다. 
이 작품은 1952년에 출판되었고 헤밍웨이에게 2년에 걸쳐 퓰리처상, 아카데미상,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겨주었다. 

헤밍웨이는 일생동안 호방하며 '굽히지 않는 신념'의 풍격으로 세상에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그는 만년에 건강이 점차 악화되어 정신이 피폐해져 갔다. 
1961년 7월 2일, 헤밍웨이는 엽총으로 자신의 집에서 생을 마감했다. 
향년 62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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