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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우스 1세, 페르시아 제국의 정복자

오늘 소개할 인물은 바로
다리우스 1세
입니다 :)

 

다리우스 1세

 

자,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다리우스 1세, 페르시아 제국의 정복자

 

생몰년 : 서기전 558~486년 
국 적 : 고대 페르시아 
성 격 : 강인하고 호전적이며 용감무쌍함 
신 분 : 정치가 
가 정 : 부친은 페르시아 국왕 캄비세스의 사촌 

다리우스는 젊었을 때부터 페르시아 왕조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서기전 535년 다리우스는 '만인불사군' 의 총지휘관으로 국왕 캄비세스를 따라 이집트로 출정했다. 

다리우스 연합군은 반란세력의 우두머리인 가우마타와 그 지지자들을 죽이고 페르시아의 왕위에 올랐다. 


다리우스 등극 초기에는 반란이 끊이지 않아 제국의 형세는 매우 위태로웠다. 

그러나 그는 통치자로서의 재능을 충분히 발휘하여 1년여에 걸쳐 열여덟 번의 크고 작은 전쟁을 치렀다. 

또한 폭동을 일으긴 8명의 국왕을 잡아들여 와해의 위기에 처해 있던 페르시아의 질서를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서기전 520년 9월, 다리우스는 게르만자 동쪽 32길로미터쯤에 위치한 비시툰 마을 옆의 가파른 경사면 절벽 위에 두 단에 걸쳐 그 기록을 새겼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비시툰 비문)으로 페르시아, 이집트, 바빌론의 3가지 문자로 비시툰산 105미터 높이의 절벽에 쓰여 있다. 

이 비문은 다리우스의 업적과 그의 신성 불가침한 권력을 널리 알린 것이다. 

국내 사정을 안정시긴 뒤 대외적인 확장을 하기 시작했다. 

서기전 517년, 그는 군대를 파병해 인도 펀자브 지방을 정벌해 폐르시아 제국의 스무 번째 사트라피(주 또는 방백령) 를 건립했다. 

서기전 513년, 그는 친히 군대를 이끌고 흑해 북쪽연안으로 가 델로스를 정복하고 나서 해륙의 양로로 진격해 도나우강 하류와 흑해 북쪽 연안의 스키타이족을 향해 나갔다. 

다리우스의 부대는 스키타이인들의 만만치 않은 저항을 받아 8만여 명을 잃고 결국 어쩔 수 없이 후퇴하고 말았다. 

서기전 492년, 다리우스는 그의 사위 마르도니우스에게 600여 척의 함대를 이끌고 그리스(아테네와 에네트리아)를 정벌하도록 했으나 도중에 풍랑을 만나 크게 손실을 입고 원정을 포기했다. 

서기전 490년 다리우스는 다시 군대를 보내 그리스를 공격해 마라톤에서 상륙에 성공했다. 

그러나 강력한 기병 부대를 가진 페르시아 군대는 보병으로만 이루어진 아테네의 군대에 참패해 되돌아오고 말았다. 


원정에 여러 차례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리우스는 계속해서 그리스를 정복하고 세계제국을 건설하려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은 그가 소망을 이루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서기전 486년, 그가 그리스로 출병하려고 계획하고 있을 때 이집트에서 대규모의 폭동이 일어나 다리우스는 이를 진압하러 나섰지만 큰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죽고 말았다. 


다리우스의 재위기간은 아케메네스 왕조가 다스린 페르시아 제국의 전성기였다. 

그는 중앙 집권제를 공고히 했으며 정치, 경제, 군사 방면의 개혁에 성공했다. 

정치적으로는 정복한 지역에 사트라프 관할구역 조직을 완성했으며 각기 총독을 두었다. 

사트라프에는 분권 통치 방식을 쓰면서도 중앙정부와 서로를 제약할 수 있는 통치 방식을 취했다. 

또 피정성복 지역에 대해서 각기 그들의 종교, 법률 및 풍속을 존중해 주민서 효과적인 중앙 집권체제를 세웠다. 

경제적으로는 새로운 세제를 도입하고 화폐와 도량형을 통일했다. 군사직인 면에서는 자신이 군대 최고 통수권자가 되어 각 사트라프의 군정은 권한을 나누어 페르시아인을 중심으로 하는 보병과 기마부대를 만들었다. 

또 페니키아 수병을 중심으로 함선 600~1,000척을 보유한 함대를 조직했다. 

각 사트라프에 즈둔하는 군대와 신속히 정보를 주고받기 위해 다시 ‘왕도'를 재건해 역과 역마를 두어 페르시아 전역에 걸쳐 교통망을 형성했다. 

그 밖에도 다리우스 1세는 인더스강에서 이집트에 이르는 항로를 감찰하도록 했으며 나일강 지류에서 홍해에 이르는 운하를 건설했다. 


다리우스의 대규모 영토 확장은 고대 사회의 지역적인 제한을 없애고 각 고대문명간의 교류 범위를 확장시다. 

이것은 인류의 교류 범위를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의 3대륙에 걸쳐 확장시켰다는 의미를 지닌다. 

다리우스 1세는 페르시아 제국의 뛰어난 정치가인 동시에 세계 역사상으로도 유명한 정치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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