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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서양 정치 철학의 시조

오늘 소개할 인물은 바로
플라톤
입니다 :)

 

플라톤, 서양 정치 철학의 시조

 

자,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플라톤, 서양 정치 철학의 시조

 

플라톤, 서양 정치철학의 시조 

생몰년 : 서기전 427~347년 
국 적  : 고대 그리스 
출생지 : 아테네 
성 격 : 고집스러우며 강인하고 지혜로움 
신 분 : 철학자, 사상가 
가 정 : 귀족집안 출신 

 

 

플라톤의 본명은 아리스토클레스인데 태어나면서부터 넓은 어깨(혹은 넓은 이마라고도 한다)를 가졌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플라톤' 이란 그리스어로 '넓다' 또는 '평평하다' 라는 뜻이다.)  

플라톤은 젊은시절 훌륭한 교육을 받으며 당시 유행하던 각종 학설을 접할 수 있었다. 

플라톤은 스무 살이 되었을 때 나이 예순 살의 대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만나 그를 스승으로 모시며 철학 연구의 기나긴 길을 걷기 시작했다. 

평민 특히 급진 민주세력의 맹렬한 공격을 받던 소크라테스의 열정적인 탐구정신은 플라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그러나 서기전 399년,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민주세력에 의해 죽음을 당하자 플라톤은 깊은 충격에 휩싸이게 되었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 무리에 속해 있다는 이유로 아테네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그는 약 스물여덟 살에서 마흔 살에 해외를 유랑하면서 수학자, 사상가, 정치가들과의 폭넓은 교류를 통해 점점 자신의 사상체계를 수립했다. 

서기전 386년, 플라톤은 아테네로 돌아와 아테네 근교의 아카데미 체육장에 학원 아카데미아를 열었다. 

그는 제자들을 모집하여 철학을 가르치며 저작 활동에 열중했고 가르치는 것을 평생 직업으로 삼았다. 


플라톤의 주요 저서로는 <소크라테스의 변명>, <향연>, <국가론>, <폴리티코스>, <파이돈> 등이 있다. 

플라톤은 주로 대화 형식으로 자신의 사상을 펼쳤는데 대화의 주인공은 바로 스승인 소크라테스였다. 

플라톤 철학의 핵심 사상은 다음과 같다. 

현실계 위에는 감각적 경험에 의한 세계를 초월하는 세계가 존재한다. 

이 이데아(idea)의 세계가 제1성이며 현실세계는 제2성이다. 

현실세계는 가변적인 것이라 이데아의 세계에만 영원불변한 진실이 존재한다. 


플라톤은 정치적으로는 귀족 정치를 옹호했으며 민주 정치에 반대했다. 

플라톤의 정치적 특징은 그의 대표작인 <국가론>에 잘 나타나 있다. 

플라톤은 국가를 거대한 한 개인으로 보았으며, 개인은 국가의 축소된 형태라고 생각했다. 

이때 개인은 지혜(절제의 세 가지 덕목을 갖춘다. 

국가에도 각기 다른 덕목을 갖춘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첫째는 현명한 통치자 계급이며 둘째는 용감히 방위를 맡은 군인 계급이다. 

셋째는 나면서부터 '절제' 의 미덕을 가지는 농부, 공인, 상인 계급이며 이들은 앞선 두 계급을 부양하는 사람들이라고 보았다. 

플라톤은 이 세 계층의 사람들이 자신의 본분을 지키고 조화를 이루면 정의가 실천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국가의 주요한 기능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이것은 권력을 지닌 자는 사유재산을 소유하지 않으며, 사유재산을 가진 자는 권력을 가지지 않는 이상적 국면을 형성한다고 생각했다. 

플라톤의 사상은 고대 스파르타의 과두정치를 근본으로 한 것으로 주 정치의 전통을 가진 아테네에서는 실현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플라톤은 말년까지도 끊임없이 자신의 주장을 펼쳤으나 받아들여 지지는 못했다. 

서기전 347년, 플라톤은 향년 80세로 세상을 떠났다. 

플라톤은 서양 철학사상 최초로 경험론을 체계화한 사람이다. 

그의 사상은 중세 유럽 기독교 문명 및 근대의 여러 유심론과 경험론 영웅주의 사관에까지 두루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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