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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위대한 철학자이자 과학자

오늘 소개할 인물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
입니다 :)

 

아리스토텔레스, 위대한 철학자, 과학자

 

자,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위대한 철학자, 과학자

 

생몰년 : 서기전 384~322년 
국 적  : 고대 그리스 
출생지 : 스타게이로스 성 
성 격 : 고집이 있으며 지혜로움 
신 분 : 사상가 
가 정 : 부친은 마케도니아 국왕 필리포스 2세의 전의(왕의 병을 치료하는 의사) 

아리스토텔레스는 귀족적이며 의학적인 분위기의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당시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문이었던 아스클레피오스 가문은 의학 및 해부의 기술을 아들에게 교육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가 전의였으니 아리스토텔레스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전통에 따라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버지의 직업을 계승해야 했으나, 이러한 의학적인 분위기는 오히려 그에게 과학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서기전 367년,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을 스승으로 삼고 플라톤의 학원 아카데메이아에 들어가 장장 20여 년 각종 지식을 연구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함께 공부하는 학생들 가운데에서도 뛰어났으므로 플라톤은 그를 '아카데메이아의 (또는 예지의 화신이라고도 함) 이라고 불렀다. 

플라톤이 사망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소아시아의 아소스로 갔다. 

그는 헤르메이아스의 궁전에 기거하면서 헤르메이아스의 질녀인(질녀이면서 동시에 양녀였다) 피티아스와 결혼하여 딸을 하나 낳아 자신의 어머니와 동일한 이름을 지어주었다. 

피티아스가 세상을 떠난 후에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시녀인 헤르필리스와 동거하면서 니코마코스라는 아들 하나를 낳았다. 


서기전 342년,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케도니아 국왕 필리포스의 아들 알렉산더의 스승이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335년 마케도니아에서의 유랑생활을 마치고 그리스로 돌아갔다. 

그리스로 돌아온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폴론 신전 근처의 숲에 학당을 열었는데, 당시 마케도니아의 왕이 된 알렉산더로부터 거액의 경비를 지원받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늘 제자들과 숲 속의 산책로 페리파토스를 거닐며 철학을 논했기 때문에 소요학파라 불리게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고대 세계에서 가장 박식한 사람이었다. 

그는 선인의 연구 성과를 종합하면서 당시에 이미 알고 있던 학문의 영역들(논리학, 정치학, 경제학, 전략학, 수사학, 학, 의학)에 대해 비상한 지적 관심을 표출했다. 

또한 논리학과 생물학 등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굳이 과장하지 않더라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연구 업적은 고대 그리스 최고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식논리학의 창시자로서 귀납과 연역의 사유 방식을 도출해냈다. 

또한 동일률, 모순률, 그리고 배중률과 이들 사유의 기본 규율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가 규정하고 발견한 원직과 범주 및 그것들의 사용에 필요한 몇몇 전문 용어들은 지금까지도 논리 교재에서 쓰이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절학 분야에서 객관 세계는 진실의 존재임을 확신했고 인류 이식의 근원은 외부 사물에 대한 감각으로부터 비롯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사인설(질료인, 작용인, 형상인, 목적인)'을 제시했는데, 이는 사물이 발생하고 움직이고 발전하는 것은 모두 이 네 가지 원인이 작용한 결과라는 것이다. 

또한 그는 정치학 분야에서 군주, 귀족, 공화, 참주, 과두와 평민의 여섯가지 정체를 상세하게 비교 설명했다. 

또 법치를 주장하며 '법률은 정욕의 영향을 받지 않는 이성이다'라고 했다. 

문학 방면에서는 미학, 문예 이론과 관련된 일련의 문제들 예를 들면 문예의 발생과 분류, 문예와 현실의 관계 등을 광범위하게 고찰했으며 문예는 심오한 사회적 의의를 지닌다고 여겼다. 


서기전 323년 알렉산더 대왕이 병으로 죽고 나서 아테네는 마케도니아 저항 운동의 중심이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이었기 때문에 아테네를 떠나 칼키스로 피신했다. 

그리고 그 이듬해에 향년 63세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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