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알렉산더 대왕, 마케도니아의 위대한 정복자

오늘 소개할 인물은 바로
알렉산더 대왕
입니다 :)

 

알렉산더 대왕, 마케도니아의 위대한 정복자

 

자,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알렉산더 대왕, 마케도니아의 위대한 정복자

 

생몰년 : 서기전 356~323년 
국 적  : 마케도니아 
출생지 : 마케도니아(그리스 북부) 
성 격  : 의지력이 강함, 날카로우면서 과단성 있음 
신 분 : 정치가, 군사가 
가 정  : 아버지는 마케도니아의 국왕 필립포스 2세 

알렉산더는 어려서부터 세계를 제패하고 위대한 업적을 달성할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부왕이 승리를 거두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자신이 그로 인해 세계를 정복하는 영광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했다고 한다. 

알렉산더는 열여섯 살부터 부왕을 따라 정벌에 나섰다. 

그는 유명한 카이로네이아 전투에서 마케도니아 기병을 이끌고 기세등등하게 적의 우익을 파고들어가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데 공을 세웠다. 


서기전 336년, 필립포스 2세는 딸의 결혼식에서 자객의 공격을 받고 사망한 후 알렉산더가 왕위를 물려받았다. 

그때 그의 나이는 스무살이었다. 

당시 국제 정세는 긴장되어 필립포스 2세가 세운 그리스 연맹과 정복했던 북방의 속지에서 차례로 반란이 일어났다. 

알렉산더는 그의 탁월한 군사적 재능을 발휘해 숱한 반란세력을 제압하고 그리스에서 차지하고 있는 마케도니아 패주의 지위를 공고히 했다. 

  
알렉산더는 내란을 평정하고 즉시 동방으로 원정을 떠났다. 

서기전 334년, 그는 보병 3만과 기병 5,000명, 전함 160척을 거느리고 페르시아를 공격했다. 

그의 대군은 빠른 속도로 소아시아들 정복해 나갔다. 

서기전 333년 11월에는 길리키아의 아수스성 근처 피나루스강 유역에서 페르시아 황제 다리우스 3세의 60만 군마와 유명한 '아수스 전투('아수스 평원의 전투' 라고도 함) 를 치렀다. 

전투가 시작되자 알렉산더는 정예병의 우측을 기병으로 제압하였고 병력을 재정비하고 맹렬한 기세로 적의 좌측을 공격한 후 바로 다리우스를 향해 돌진했다. 

이로써 페르시아 군대는 완전히 궤멸했으며 다리우스 3세의 어머니, 아내와 두 딸은 포로로 잡혔다. 

알렉산더는 다리우스 3세의 화친을 거절하고 페르시아 해군을 격파하며 지중해를 장악했다. 

또한 그는 이집트를 무혈점령하며 서기전331년 봄, 군대를 메소포타미아에 주둔시기고 페르시아 본토로 진격을 감행했다. 

같은 해 9월 옛 앗시리아의 수도 나네베 부근의 가우가멜라에서 페르시아 군대와 결전을 벌였다. 

페르시아군은 군사가 백만에 도륜전차 200여대를 보유한 대군이었지만 참패하고 말았다. 

다리우스 3세는 동쪽으로 피신했으나 빅트리아의 총독인 베소스에 살해당했고 베소스는 오래지 않아 알렉산더에게 잡혀 죽음을 맞게 되었다. 

한 시대를 호령하던 페르시아 제국은 결국 알렉산더의 철기 아래 무너지고 만 것이다. 

서기전 324년, 알렉산더는 바빌론으로 돌아옴으로써 원정을 마쳤다. 


알렉산더는 군사 정복을 통해 동으로 인더스강에서 서로는 마케도니아와 그리스까지 바빌론을 수도로 하는 전대미문의 거대한 제국을 세웠다. 

그는 적극적으로 제국내의 경제 및 문화교류를 촉진시컸다. 

알렉산더의 원정으로 많은 그리스의 학자들이 동방으로 유입되어 현지의 과학과 문화를 연구했다. 

이로써 동서 과학 문화의 상호 보완과 교류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또한 알렉산더는 마케도니아인들과 동방인들의 융합을 위해 결혼을 장려했으며 시범적으로 다리우스 3세의 딸과 결혼을 하기도 했다. 

알렉산더의 여러 가지 적극적인 조치들로 그리스는 흥성할 수 있었다. 

서기전 323년 6월 13일, 알렉산더는 다시 원정을 준비하다가 33세에 병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