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샤를마뉴 대제, 신성 로마제국의 창건자

오늘 소개할 인물은 바로
샤를마뉴 대제
입니다 :)

 

 

샤를마뉴 대제

 

 

자,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샤를마뉴 대제, 신성 로마제국의 창건자

 

생몰년 : 742~814년 
국  적 : 프랑크왕국 
출생지 : 로마 
성  격 : 너그러움 
신  분 : 정치가 
가  정 : 아버지는 카롤링거 왕조의 국왕 피핀 

샤를마뉴(또는 샤를이라고 불리기도 함)는 어려서부터 종교적인 환경에서 자랐다. 
기독교에 대해 경건하고 정성스러웠으나 훌륭한 문화적 교육을 받지는 못했다. 
그의 아버지 피핀이 751년 카롤링거 왕조를 창립했을 때 그는 겨우 아홉 살이었다. 
768년 그의 아버지는 부종으로 파리에서 죽고 샤를마뉴와 카를로만 두 아들만을 남겼다. 
프랑크인들은 민중대회를 열어 이 두 아들을 국왕으로 삼고 국토를 양분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카를로만은 국왕의 권리를 버리고 수도원으로 들어가 수도사가 되었고 3년 뒤 세상을 떠났다. 
결국 771년 모든 프랑크인들의 동의를 얻어 샤를마뉴가 국왕으로 추대되었다. 

샤를마뉴는 대규모 영토 확장을 감행하여 일생동안 50회의 원정을 벌였으며 그 중 30회는 친히 참전했다. 
그 중 가장 오랜 기간의 전쟁은 북방의 작센족을 정벌한 것이었다. 
그는 기독교를 전파한다는 명목으로 772년부터 여덟 차례에 걸쳐 공격해 장장 33년의 전쟁 끝에 작센족을 정복하고 이들을 프랑크 신민으로 삼았다. 
수십 년간의 전쟁으로 프랑크 왕국은 오늘날의 프랑스, 스위스, 네덜란드, 벨기에, 오스트리아 및 독일과 이탈리아 등에 걸치는 광대한 영토를 차지했다.(이로 인하여 그는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그로써 당시 서유럽에서 공전의 강대한 국가를 형성했다. 

800년, 샤를마뉴는 로마로 진격해 로마 귀족에게 축출당한 교황 레오 3세를 도와주고 교황으로부터 '로마 황제' 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그로부터 프랑크 왕국은 '샤를마뉴 제국' 이 되었고 국왕을 '샤를마뉴 대제' 라 부르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제국을 고대 로마제국의 연속으로 보았는데 일부 역사학자들은 샤를마뉴의 대관식을 신성 로마제국의 탄생으로 보고 있다. 

샤를마뉴는 기독교에 열성이었으며 경건한 믿음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교회와 수도원에 학업을 가르치도록 권장했다. 
또한 궁궐안에도 학원(궁정학원)을 세웠으며 널리 교사, 학자, 예술가들을 불러 강연을 열기도 했다. 
그는 일반인들 가운데서 아이들을 선발해 부유한 가정의 아이들과 함께 교육받도록 했다. 
심지어는 출신이 천하더라도 학업성적이 우수한 청년 전도사를 주교로 삼기도 했다. 
그는 아헨에 도읍을 정하고 난 후로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여 휘황찬란한 궁전과 교회를 많이 지었다. 
이로 인해 건축이 발전하고 회화와 조각 같은 예술도 발전하게 되었다. 
샤를마뉴는 라틴문과 그리스문의 친필 원고를 수집하고 베껴 쓰도록 했다. 
그는 필사본의 내용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지만(그는 글을 몰랐다고 함) 후대를 위해 수많은 고전 작가의 저작들을 남겨주었다. 

샤를마뉴는 814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843년, 그의 세 손자가 각기 왕이 되어 제국을 셋으로 나누었다. 
동 프랑크는 이후에 독일이 되었고 서 프랑크는 프랑스가 되었다. 
또 동부와 서부의 중간 지역은 이탈리아가 되었다.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