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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 Picasso, 현대 예술의 거장

오늘 소개할 인물은 바로
피카소
입니다 :)

 

피카소, 현대 예술의 거장

자,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피카소, Picasso, 현대 예술의 거장

 

생몰년 : 1881~1973년
국 적 : 스페인
출생지 : 말라가
성 격 : 반항적, 감정이 풍부, 정직
신 분 : 예술가
가 정 : 평민 가정 출신, 아버지는 시골학교 미술 선생님이셨음

아버지의 영향과 교육으로 피카소는 여덟 살 때부터 그림 공부를 시작했다. 당시 그는 자신이 그린 그림을 우산 가게 앞에 걸어 놓고 사람들에게 감상하게 했다. 피카소는 열다섯 살 때 마드리드에 있는 산 페르난도 왕립 미술 학교에 들어갔다. 그러나 1898년 성홍열을 앓아 중도에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다. 병이 완치된 후 피카소의 아버지는 그를 파리로 보냈다.

 

1900년, 피카소는 파리에서 첫 번째 전시회를 개최하여 프랑스 미술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04년, 피카소는 파리에 정착했는데 이 시기의 그림은 청색 위주였다. 그는 청색으로 인간의 고통을 표현해 냈는데, 당시 피카소의 궁핍했던 생활과 깊은 연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후 피카소는 여화가인 올리비에와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그녀와 함께 하던 시기에도 생활은 여전히 어려웠지만 피카소의 그림들은 밝은 색채를 띠게 되었다. 이 시기를 장밋빛 위주의 그림이라 하여 '장밋빛 시대' 라 부른다. 대표작으로는 《곡예사 가족》, 《공위에서 묘기를 부리는 소녀》, 《부채를 든 여인》 등이 있다.

1908년 이후 피카소는 '입체주의' 화풍을 실현했는데 대표작으로는 《아비뇽의 처녀들》이 있다. 피카소와 프랑스 화가인 브라크는 많은 풍경과 정물을 그리며 형식상에서 기묘한 효과를 추구하려 했다. 자연으로부터 체적과 공간을 뽑아내려 노력했으며 작은 평면으로 물체를 표현해 냈다. 그때 이후로부터 오랜 시간 동안 피카소의 화풍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입체주의에서 신고전주의, 또 1925년 이후에는 초현실주의로 바뀌어갔다.


1936년, 스페인 내전이 발발한 후 피카소는 파시즘에 반대하는 사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림을 판 돈 40만 프랑은 스페인 공화국 정부를 위하여 내놓기도 했다. 1937년 독일 파쇼(파시즘적인 운동, 경향, 단체, 지배 체제를 이르는 말: 독재) 공군이 스페인의 작은마을인 게르니카에 무려 3시간 동안 무차별 폭격을 감행하여 도시를 폐허로 만들었다. 피카소는 소식을 듣고 분노하여 이 사건을 소재로 자신의 대표작인 《게르니카》를 그렸다. 이 그림은 검정색, 흰색, 회색의 세 가지 색감으로 입체주의, 현실주의, 초현실주의를 표현해 내며 고통, 불행, 전쟁의 잔학성 등을 표현했다. 그림에는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 울고 있는 여인, 불이 난 집, 죽은 사람의 시제, 날 뛰고 있는 소, 창에 찔린 말 등이 그러져 있다. 이 그림은 파시스트의 폭행에 대한 강렬한 항의를 담고 있다. 독일군이 파리를 점령한 후에도 피카소는 여전히 파리에 거주하며 외부세계와 차단한 채 그림 그리기에 전념했다. 동시에 그는 반파시즘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자신이 그린 그림으로 파시스트의 폭행을 낱낱이 고발했다. 1944년, 파리가 해방된 후 피카소는 대형 전시 작품 전람회를 열어 높은 영예를 얻게 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또 세계 평화를 위해 특별히 《평화의 비둘기》를 그렸다.

 

1973년, 피카소는 향년 92세에 병으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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