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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키, Gorky, 무산계급 문학의 대표주자

오늘 소개할 인물은 바로
고리키
입니다 :)

고리키, Gorky

자,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고리키, Gorky, 무산계급 문학의 대표주자

 

생몰년 : 1868~1939년
국 적 : 구소련
출생지 : 볼가강 유역 니주니 노브고로트
성 격 : 꿋꿋하고 노력하며 열정적임
신 분 : 문학가
가 정 : 평민 가정 출신. 아버지는 목수였음

고리키의 원명은 알렉세이 막시모비치 페쉬코프이다. 그는 네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외할머니 댁에서 자랐다. 그는 어렸을 적 선량한 외할머니와 가장 가깝게 지냈다. 고리키는 초등학교를 2년밖에 다니지 못하고 열 살에 사회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는 배달부, 야간 경비, 제빵사 심지어는 노숙자로 지내면서 인생의 쓴맛을 모두 보았다. 사회 하층의 생활과 풍부한 독서량은 그에게 러시아에 대한 깊은 인식을 심어주었고 훗날 문학 창작의 풍성한 소재가 되어 주었다.


1892년, 고리키는 필명으로 첫 장편 소설 《마까르 추드라》를 내놓았다. 1896년 그는 《니즈니노브고로뜨신문》의 편집을 맡았다. 고리키의 초기 작품은 많은 노숙자들의 모습을 담아냈으며 낭만주의 색채를 깊이 띠고 있었다. 그는 1901년 《바다제비의 노래》에서 바다제비를 러시아 무산 계급 혁명자의 화신이자 승리의 예언자로 비유하면서 격정적인 목소리로 외쳤다. '폭풍우여! 더욱 거세게 몰아쳐라! 1901년부터 고리키는 혁명 투쟁의 거센 흐름에 뛰어들어 수차례나 체포되는 신세가 되었다. 1902년, 짜르의 전제정권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으로 쓴 희곡 《밤주막('밑바닥' 이라고도 함)》이 공연에서 대성공을 거두면서 책은 인쇄되기가 무섭게 팔려나갔다. 고리키는 대학과 공장 그리고 살롱에서 크게 환영받았다. 1903년, 짜르 극우파가 그를 찌르는 사건이 발생했고 온 사회와 여론은 크게 분노했다. 1905년 러시아 혁명 때, 고리키는 '우리는 다시는 이런 제도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라며 신랄하게 말했다. 그는 짜르의 폭정에 항의하기 위해 공개서한을 발표하고 전제정권의 전복을 부르짖다가 체포되고 말았다. 뒤에 짜르 정부는 사회와 여론의 거센 압력을 견디지 못해 그를 석방했다.

1906년, 고리키는 미국으로 갔다. 고리키는 미국에서 자신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장편 소설 《어머니》를 썼다. 그는 노동 혁명가 파벨 모자의 영웅적인 모습을 이 책을 통해 표현해 냈다. 러시아 노동자 계급이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접하고 실질적인 투쟁에 참가하면서 성숙해 가는 과정과, 무산 계급 정당 지도하의 노동 운동의 발전을 묘사했다.

아울러 그는 '혁명 이론이 없으면 혁명 운동도 없다.'는 논리를 펼쳤다. 그의 《어머니》는 첫 번째 사회주의 현실주의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후에 고리키는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지를 돌았다. 이탈리아에 머무는 동안 그는 창조론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 그는 중편소설 《참회》에서 이런 사고를 명확히 반영하고 있다. 고리키는 1905년에 레닌과 처음으로 만났는데 이때 레닌은 그의 사상 발전을 주의 깊게 살펴보며 성심껏 도와주었다. 1913년, 짜르 정부의 정치범 대 사면으로 고리키는 러시아로 돌아왔다. 뒤이어 그는 3부작 자서전의 첫 두 편인 《유년시절》과 《세상 속에서》를 완성했다. 10월 혁명 후 고리키와 볼셰비키 간에는 의견이 나뉘었다. 고리키는 사람의 생명과 문화를 존중했고 러시아의 피를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레닌을 영수로 하는 볼셰비키 당에서는 낡은 세력과 반드시 결연한 투쟁을 벌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1923년, 고리키는 자서전의 마지막 한 편인 《나의 대학시절》을 완성했다. 그는 1925년, 다시 장편 소설 《아르타모노프 일가의 사업》을 발표했다. 그는 이 책에서 러시아 자산 계급 3대의 생활을 통해 러시아 자산 계급의 현황을 노골적으로 폭로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은 장편 소설 《클림 사므긴의 생애》였다.

고리키는 생전에 많은 명성을 누렸기에 그의 고향은 지명을 아예 고리키로 바꾸었다. 모스크바에도 고리키 거리가 생겨났다. 문학 창작 외에도 고리키는 사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레드 버진지》 잡지의 편집 일을 보았고 세계 문학 출판사를 세웠다. 또한 적극적으로 국내 전쟁사와 공장사를 집필했다. 그는 많은 소련 작가들을 양성하기도 했다. 1936년 6월 18일, 고리키는 68세의 나이에 병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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